○ 전시명: 녹는 바다
○ 작가: 김영은, 김지영, 임영주
○ 기획: 이성희
○ 그래픽 디자인: 강경탁(a-g-k.kr)
○ 공간디자인: 김형준
○ 사진: 홍철기
○ 기간: 2017년 10월 17일(화) ~ 11월 17일(금)
○ 오프닝 리셉션: 2017년 10월 17일(화) 오후 6시
○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 관람시간: 10:00 ~ 18:00 (월요일 휴관)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여전히 그 후는 없지만
이성희(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세월호 이후 멈춘 시간, 사건의 원인이 규명되는 듯하다가 다시 도돌이표가 되는 상황에서 개인들은 그 시간을 움직이고자 부단히 애썼다. 그 누구도 아무 것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실에, 무엇보다 이미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무력감에 신음했고,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을 억누르기도 하고 혹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표출하기도 했다. 지난 3년간 이 사건은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뒤흔든 일상의 폭풍이었다. 몇 년간 우리안에 내재된 무기력과 분노의 파동은 천천히 사고의 변화를 가져와 현상을 감각하는 방식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놓은 듯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를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변해버린 우리의 마음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것을 감각할 때 새롭게 보게 되고, 진실은 표면에 있지 않다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불신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전시의 제목은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과연 우리는 얼어붙은‘바다’를 다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그렇게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또한 ‘바다’를 볼 때, 발음할 때, 쓸 때,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늘진 이미지와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싶었다. 입에 물었다 삼키는, 쓰려다 머뭇거리게 되는, 의미가 바뀐 말들을 다시 자연스럽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먼 미래가 아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날 이후의 세상을 재구성하고 다시 희망과 가능성을 얘기하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우리의 현재적 상황을 미술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동안,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변했다. 작년 가을 전시 구상 초기 단계에 생각했던 제목은 ‘방관자와 연루자’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헤아릴 수도 없이 허술하고 엉망인 사회 구조과 현재의 사건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 자체가 그에 동조하는 일이고 유사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양산할 것이라며, ‘역사의 반복’을 피하기 위한 고민을 예술적 측면에서 시도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보았고 그들과 함께 했다. 그렇게 지난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올 무렵 우리는 대통령 탄핵 심판을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촛불집회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는 차치해두더라도, 그것은 최소한 시민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건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는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이 전시는 세월호 사건 이후 지난 3년 시간을 감각하고 현재화하여, 변한 것은 무엇인지 또 기억하고 상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작은 시도이다. 세 명의 작가(김지영, 임영주, 김영은)는 서로 다른 시각과 관점을 통해 작가이자 한 개인으로서 경험한, 변화된 시간들을 현재화한다. 역사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마주하고 기억해야 할 사건들을 공감의 영역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작업, 미디어가 조장하는 왜곡 속에서 비판의 대상과 방향마저 잃어버린 상황을 되새겨보는 작업, 그리고 다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어느 지점에서 서로 연결되고 반응한다.
김지영은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이전의 사건들을 나란히 병치시켜 풍경화 형식으로 그려낸다. 파랑색조로 퇴색된 듯한 감각적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무너져내리거나 폭발의 징후가 목격된다. 마치 같은 시간 같은 사고로 폐허가 된 풍경들 같지만 실은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한 사건들이자 반복되는 사고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회화와 함께 뉴스기사 형식의 텍스트 작업을 병치하여 관람객이 사건들의 풍경을 감각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 그가 쓴 글의 시작에는 해당 사건 발생일의 날씨예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날이 맑거나 흐리고 비가 내리다 개는 여느 날이 갑자기 비극적인 날이 된 상황을 스산하게 환기한다. 천재지변이나 기상악화 등의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인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임영주의 <대체로 맑음>(2017)에도 일기예보의 요소가 등장한다. 작가는 기상보도가 취하는 전략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다루며, 합리적인 것과 미신, 믿음과 불신 사이의 경계를 오간다. 김지영이 서로 다른 사건들에서 반복되는 유사한 구조적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기존의 뉴스기사를 참조하고 그만의 보도기사를 만들었다면, 임영주는 사고와 재난의 상황에 왜곡된 거울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매스컴의 속성과 우리 자신에게는 거울을 들이대지 않는 모순된 상황 자체를 병치한다.
김영은의 <소리의 살>(2017)은 우리가 들었던 소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귀에 익은 생일축하노래의 허밍이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가 계속 중첩되면서 소리는 변화한다. 이 작업은 기존의 노래가 시위현장에서 사용되면서 사적인 노래가 공적인 방식으로 맥락이 전이되는 것에서 출발했다. 소리를 하나의 물질로 제시하는 <소리의 살>은 우리가 지난 촛불집회 때 듣고 발화했던 개인의, 공공의, 연대의 목소리를 상기하게 만든다.
이 전시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개인들이 느낀 말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각기 다른 결의 언어로 담아낸다. 그저 그날 이후에도 흐르는 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기억을 붙잡아 누군가의 옆에 머무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 우리가 망각에서 물러나 개인적인 인식의 전환을 이루어 그것을 일상과 매개할 때, 변화의 가능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